(Ultra Fast Fashion)
지속가능 패션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에 대해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패스트 패션은 최신 트렌드의 옷을 저렴한 가격과 빠른 속도로 제작·유통하여 소비자가 짧은 주기로 새로운 옷을 구매하도록 하는 패션 산업의 구조입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대중화되며, H&M이나 ZARA 등의 브랜드가 세계적으로 성장하게 하였고, 값싸고 질이 떨어지는 제품을 생산하며 의류를 빠르게 생산하고 폐기하는 패션 생태계를 만들어 온 것으로 지적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이를 뛰어넘는 속도, 더 최악의 패스트 패션이 등장했습니다. 패스트 패션보다도 더 빠른 생산 주기, 더 빠른 유행 전환, 더 많은 폐기를 하는 울트라 패스트 패션(Ultra Fast Fashion)입니다.
패스트 패션 브랜드 자라(ZARA)가 제품을 디자인하고 생산하고 포장하는 데까지 3-4주가 걸린다면 울트라 패스트 패션으로 구분되는 쉬인(SHEIN)은 단 1주에 그 과정을 마칩니다. H&M의 경우 2022년 상반기 4,414개의 새로운 의류 스타일을 제시했는데, 쉬인은 315,000개의 스타일을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이 많은 제품을 만 원 이하의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어요. 울트라 패스트 패션은 패스트 패션을 뛰어넘는 속도로 가격 경쟁력을 보이는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브랜드가 중국의 쉬인(SHEIN), 테무(Temu), 영국의 부후(Boohoo), 홍콩의 엠미올(Emmiol), 패션노바(Fashion Nova), 프리리틀띵(PrettyLittleThing) 등입니다. 이 브랜드와 플랫폼 모두 온라인만을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이며 빠른 생산과 리액션을 보이고 있어요.
쉬인 앱은 아마존 앱의 설치율을 뛰어넘기까지 할 정도로 인기입니다. 특히 이 브랜드 및 플랫폼의 제품들은 Z세대로 불리는 젊은 소비층이 관심을 많이 두고 있다고 해요. 퍼블릭 아이(Public Eye)가 쉬인의 사례를 중심으로 살폈을 때 울트라 패스트 패션을 가능하게 한 요소는 다음과 같아요.
제품 보관 등이 필요한 매장을 운영하지 않고 온라인 기반으로 거래하고 직접 배송함으로써 비용 절감
트렌드를 빠르게 파악하고 반영할 수 있도록 온라인 툴 사용
앱 내 사용분석을 통한 자동 동기화 및 대처
인플루언서 활용 마케팅
저렴한 공급처와의 공고한 연결망
울트라 패스트 패션은 중독적인 면이 있는 것이 특징이기도 합니다. 이는 제품 소비가 콘텐츠화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해요. 대표적인 것이 제품 하울 비디오입니다. ‘하울’(Haul)은 끌다라는 뜻의 영어 단어인데요, 제품 하울은 품평을 위해 매장 물건을 쓸어 담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비자들은 하울을 통해 자신이 구매한 제품을 자랑하고 소개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시청하면서 대리 만족을 하기도 하고, 제품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해요.
한국에서는 ‘택배깡’, ‘쉬인깡’, ‘테무깡’ 등의 이름으로 유행하고 있기도 해요. 소비자들은 저렴한 물건을 한 번에 열 개, 스무 개씩 구매해서 열어보고 확인하는 콘텐츠를 생산합니다. 담다보니 얼마가 되었다, 몇 개를 담았는데 너무 싸다 등의 캡션이 달린 영상들이 많은 관심과 좋아요를 받고 있어요.
2025년 3월 기준으로, #sheinhaul (쉬인하울)과 관련된 틱톡 콘텐츠는 120만 개 정도이며, 전체 조회수는 3억 7천만 정도예요. 이런 콘텐츠에 등장하는 소비자들은 대개 재미로 대량 소비를 합니다. 구매하여 사용하는 것에 큰 목적이 있기보다는 구매 행위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경우가 많죠. 때문에 쇼핑에 실패한다고 화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웃어넘겨요. 애초에 기대하지 않으니까 큰 실망도 없는 것이죠. 그 문화가 확산하면서 테무, 알리 등은 저렴하고 어딘가 좀 부족한 것의 형용사처럼 여겨지며서 사용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애매하게 연예인을 닮은 사람에게 ‘테무 000’이라 이름 붙여 주는 식이에요.
비슷한 방식의 패션 챌린지도 유행하고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 틱톡에서 유행하는 ‘킵 오어 리턴(Keep or Return)’ 챌린지는 값 싼 제품을 대량으로 구매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품하고 괜찮으면 사용하는 트렌드에요. 울트라 패스트 패션 판매 업체들이 마케팅 목적으로 무료 배송 및 반품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 특징을 활용해 소비자들은 재미를 위한 챌린지를 만들고 덜 신중한, 과잉 소비를 하고 있는 것이에요.
더 빠르고, 저렴한 의류를 만들기 위해 탄소 발생, 토양 및 물 오염, 에너지 낭비의 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울트라 패스트 패션 제품은 대개 저렴한 소재,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어집니다. 블룸버그의 2022년 자료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플라스틱은 약 3억 톤이며 그중 5분의 1은 패션 산업에서 차지하고 있다고 해요. 울트라 패스트 패션의 대표 주자인 쉬인(SHEIN)의 의류 95.2%는 새로운 플라스틱으로 만든 옷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플라스틱으로 만드는 합성섬유 옷은 소재 생산을 위해 막대한 에너지를 사용하며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합니다. 또한 착용 시마다, 세탁 시마다 미세 플라스틱을 배출하는 소재이기도 하죠.
프린스턴대 기후이니셔티브에 따르면 티셔츠 하나를 제작하는 데에 3천 리터의 물이 사용된다고 합니다. 제네바 환경 네트워크는 산업 폐수 오염의 20%는 패션 산업으로부터 초래된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어요. 더불어 울트라 패스트 패션 브랜드는 전 지구적인 생산자와 소비자를 가지므로 여러 국가로 이동하게 되며, 주로 저소득국에서 생산된 의류는 항공운항으로 세계 곳곳에 전달됩니다. 항공 운송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엄청나지요. 국제 비정부기구 퍼블릭 아이(Public Eye)가 분석한 결과, 방글라데시에서 생산된 의류가 항공 운송으로 유럽에 도착한다고 할 때 탄소발자국은 선박 운송 3%에서 항공 운송 28%로 급증합니다.
그런데 울트라 패스트 패션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의류 폐기물에 대한 문제입니다. 지속가능성 전문가들은 "틱톡커들이 지속 불가능한 제품을 구입할 뿐 아니라, 반품된 제품들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모른 채 무료 반품을 이용하고 있다"라고 지적하기도 해요.
대부분의 반품 제품은 비용을 이유로 폐기되기 때문입니다. 세계 최대 물류·창고기업 프롤로지스(PLD)의 하미드 모감다 CEO는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많은 고객사가 소비자에게 ‘그냥 가지세요’라고 말할 정도로 반품에 들어가는 비용이 많다”라고 말했어요. 결국 소비자의 반품은 실제로 제대로 반품되어 사용되지는 않아요. 반품 제품 유통 스타트업 옵토로(Optoro) 최고경영자 토빈 무어의 경제전문매체 CNBC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미국에서만 반품으로 인해 연간 약 2,800만 톤의 폐기물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이는 미국인 330만 명이 1년간 생산하는 쓰레기와 맞먹는 양이에요. 그리고 이때 온실가스는 1,600만 톤(tCO2e·이산화탄소 환산톤)이 배출됩니다.
패스트 패션 산업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따르면, 해당 산업이 다품종 제품을 소량으로 빠르게 생산하는 구조이기에 이를 효율적으로 운영한다면 소비자가 원하지 않는 옷의 생산을 줄일 수 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울트라 패스트 패션은 옷을 너무 빨리 버리도록 부추기는 문화를 조성하고 있는 점 역시 중요하게 바라보아야 할 것이에요.
보그 등의 패션 잡지사 저널리스트 반다나 테와리는 “현대의 식민주의(modern-day colonialism)”라는 말로 패션 산업을 비판합니다. 서구 패션 브랜드들이 저소득국의 자원과 노동력을 부조리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국제 비정부기구 퍼블릭 아이(Public Eye)는 2021년의 리포트에서 쉬인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을 고발했습니다. 중국 남부지방에는 쉬인에만 옷을 공급하는 작은 제조 공장들이 모여있는 ‘쉬인 마을(Shein Village)’이 있습니다. 한 공장에서 하루에 약 120만 벌의 의류를 생산하고 있죠. 대부분의 공장들의 시설이 매우 열악합니다. 비상구는 없으며, 창은 가려져 있고, 출입구는 자유롭게 오갈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어요. 2025년 1월에 보도된 BBC의 기사는 쉬인이 런던증권거래소 상장을 앞두고 공급업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도 하였으나, 노동 환경이 빠르게 개선되지는 않아보입니다.
이곳의 노동자들은 한 주에 75시간 이상 근무하고 한 달에 하루의 휴일을 받는다고 해요. 중국의 노동법에 따르면 주당 최대 노동시간은 40시간이고, 노동자들은 한주에 최소 하루의 휴일을 가져야 합니다. 초과근무 시간은 한 달에 36시간을 넘기면 안되지만, 이들에게는 그 기준이 무색해 보입니다.
BBC가 쉬인 마을에 방문해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보도하며 어린이 노동자들이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쉬인은 이 사실을 인정했으나, 이후의 조치가 나아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어요.
2013년, 1천 134명의 목숨을 앗아간 라나 플라자 사건을 기억해 봅니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의 제품들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마감일에 쫓기며 일을 해야 했던, 열악한 환경의 방글라데시 의류 공장에서 생긴 사고는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낳게 했습니다. 라나 플라자 사건 이후 10여 년이 지났지만, 우리의 옷을 여전히 누군가의 위험과 착취를 대가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더 가디언즈와 인터뷰한 런던 출신의 25세 콘텐츠 크리에이터 토니 머피는 쉬인에 중독되었던 적이 있음을 고백했어요. 궁금증에 쉬인 플랫폼에서 한번 쇼핑한 후 지속적으로 광고가 떠서 계속해서 구매하게 되어버렸다고 해요. 알고리즘 기술로 인해 한 번 구매하면 취향에 맞는 유사한 상품을 계속해서 추천해 주기 때문에 소비자들을 그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합니다. ASMR 콘텐츠를 주로 올리는 미국의 유명 유튜버 마키나 켈리는 ‘asmr SHEIN haul’을 컨셉으로 제품을 사용해 보고 광고하는 쉬인 파트너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이기도 합니다. 인플루언서 콘텐츠로 이익을 만드는 구조이기에 많은 소비를 부추기고 있어요.
옷이 필요하거나 자기 표현을 위해 패션을 선택하는 것에서 벗어나, 콘텐츠를 즐기거나 시간을 소비하는 수단으로서 패션을 소비하게 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그 결과는 어떨까요?
그린피스의 2017년 설문에 따르면 과소비로 인해 소비자들은 구매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끼고 다른 사람의 판단을 두려워하는 등 중독과 유사한 불안을 느끼게 된다고 해요. 쇼핑에 중독되면 쇼핑하지 않을 때 공허함, 상실감, 불만족을 경험하며 다시 쇼핑하게 되고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패션/뷰티 유투버 티아 테일러는 자신의 쇼핑 중독에 대해 고백하며, 그 복잡한 감정에 대해 얘기하기도 했어요.
소비자의 눈길을 잡고 더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기 위해 울트라 패스트 패션을 다루는 플랫폼들은 다양한 마케팅을 진행합니다. 테무를 자주 이용하던 익명 이용자는 테무에서 제공하는 '깜짝 서프라이즈'에 유혹되어 친구들을 초대했지만, 요구하는 조건 - '7명 초대 시 보상 보장', '최대 60명 초대해야 무료 사은품 제공' 등- 을 충족시키지 못해 결국 포기해야 했던 경험을 이야기했어요. 이런 마케팅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테무에 기만당했다는 느낌을 받아 의구심을 가졌으나, 이에 대해 테무 측은 법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하네요.
패스트 패션 시장이 커지고 더 강력한 울트라 패스트 패션도 등장하면서 비판 역시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특히 EU는 패스트 패션에 문제 제기를 넘어 규제화를 진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곳입니다. 제품을 제조한 생산자들이 해당 제품이 폐기된 이후의 처리비용까지 부담해야 한다는 ‘생산자 책임 재활용 제도’(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EPR)를 통해 생산자에게 재활용 의무를 부과하고 미이행 시에는 부담금을 납부하도록 합니다. EPR 제도가 시행되면 기업은 재활용 불가능한 폐기물이 많을수록 훨씬 큰 부담을 안아야 하기 때문에 폐기물을 줄이고 소재 개선을 위해서도 노력해야만 합니다.
특히 프랑스는 울트라 패스트 패션에 강경하게 대응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요. 프랑스 하원은 2024년 3월 14일에 쉬인(Shein)과 테무(Temu)와 같은 거대 온라인 리테일 기업이 판매하는 패스트 패션과 울트라 패스트 패션을 대상으로 하는 "킬 법안"을 만장일치로 승인했어요. 이 법안은 패스트 패션 기업의 광고를 전면 금지하고 환경 영향 평가에 따른 벌금을 부과하며, 그 벌금을 2030년까지 의류 한 벌당 최대 10유로(8.54파운드 또는 10.92달러)까지로 늘리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또 패스트 패션 리테일러가 제품 가격에 품목의 재사용, 수리, 재활용 및 환경적 영향을 포함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도 포함합니다.
약 1년 간의 검토 기간 동안 상원 통과가 되지 않고 있어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지난 6월, 프랑스 상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하였음을 발표하였습니다.
하지만 법안이 검토되며, 금지 및 처벌 관련 조항이 완화된 방향으로 개정된 것에 대해 환경 단체들의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며, 유럽연합(EU)의 법적 검토 역시 진행되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앞으로 프랑스 패스트 패션 규제 법안이 어떻게 적용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에요.
법적인 변화와 별개로, 패스트 패션에 저항하는 소비자들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슬로우 패션 운동입니다. 의식적으로 살펴보고, 제대로 만드는 제품을 구매하고, 쇼핑과의 건강한 관계를 맺는 것이 핵심입니다.
KOTRA와 인터뷰한 미국 로스앤젤레스 패션 디자인 업계 종사자 H 디자이너는 “최근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Z세대와 같은 젊은 소비자들을 필두로 슬로우 패션이나 제로 웨이스트 생활 방식 등의 대안을 채택해 패션 소비의 변화를 추구하려는 경향이 늘고 있음을 체감한다”고 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패스트 패션을 통해 만들어지는 옷들보다 제대로 된 옷을 선택하며 자신만의 개성을 더 표현하기를 원하기도 하죠.
패스트 패션을 넘어서는 울트라 패션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규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소비자들은 새로운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요?
Editor. 예은